(연재소설) 일본을 떠나며

그날, 돈봉철은 마키코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낼 수 없었다. 마키코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그가 속였던 것, 숨겼던 것, 그리고 마키코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것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마키코, 할 말이 있어.”
카페의 창가에 앉아, 둘은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바깥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하얀 눈이 흐릿하게 비쳤다. 마키코는 조용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돈봉철?”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무언가가 느껴졌다. 봉철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야. 내가 말해온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었어.”
마키코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그의 말을 되새기며 조용히 말했다.
“무슨 말이야? 너, 이제까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봉철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마키코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조선인이다. 내 여권도 북조선 것이고, 일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너를 배신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그의 고백을 들은 마키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고 있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조선인… 그러면 나는… 그럼, 나는…”
마키코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멀리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난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너에게 그런 피가 흐르는 걸 상상할 수 없겠어.”
봉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는 마키코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말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마키코…”
“나는 너와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더러운 피가 흐르는 사람은, 내게 너무나도 멀어. 지금까지 네가 어떻게 내게 그렇게 다가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 미안하지만, 이제 너와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마키코는 말을 마친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봉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고, 그 순간, 봉철은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로, 봉철은 카페를 떠나고 다시는 마키코와 만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는 일본에서의 삶을 끝내야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본에 남을 수도 없었고, 자신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갈 곳은 북조선뿐이었다.
그날의 공허함과 그녀의 차가운 말들이 그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모든 일이 그의 운명이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