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됸뵹철) 꽃바구니 옆에 끼고

꽃바구니 옆에 끼고
꽃바구니 옆에 끼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꽃잎을 건드리자
연분홍 빛이 흩어졌다
한때는 누군가의 손길에
곱게 다듬어진 꽃들이었으나
지금은 시들어가는 냄새를 풍기며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꽃잎 위로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떨어진 꽃잎 몇 장뿐이었다
나는 꽃바구니를 단단히 끼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뎠다
발밑에서 마른 꽃잎이 바스락거렸고
어디선가 흐린 종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이란 것도 이 꽃들처럼
곱게 피어나지만
결국엔 시들어 떨어지는 것일까
나는 바구니 속의 꽃들을 바라보다
그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