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뵹철의 감수성) 결국

결국
두만강은 얼어붙었고
계림숙은 돌아오지 않았다
흐르던 물줄기는 멎었고
강을 건너던 발자국은
눈 속에 깊이 파묻혔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한겨울의 강보다 차가웠다
손끝에 닿던 온기,
귀를 간질이던 목소리,
눈을 감아도 남아 있던 얼굴마저
서늘한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남한으로 탈북하겠다 했다
봄이 오면, 얼음이 녹으면,
기다려달라 했다
그러나 강은 다시 흐르고
눈은 녹아 사라졌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녀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밤마다 문을 두드리는 바람만이
그녀의 이름을 속삭일 뿐이었다
기다림은 끝이 없었고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입술도
더는 떨리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무너진 시간과
끝내 닿지 못한
한 마디의 말뿐이었다 계림숙을 추억하며
(초중고를 일본 조선학교를 나오고 2017년까지 약 9년을 평양/개성에서 살았던 돈뵨철의 실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