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뵹철) 돈봉철, 엘시티의 밤

칼끝이 빛나는 밤이었다
부산 바닷바람도 그를 비켜갔다
한때는 식구였지
주먹으로 길을 닦고, 칼로 길을 열던 시절
거리의 법이 그의 것이었고
그의 말은 곧 계약서였다
엘시티, 유리벽 너머로 쏟아지는 야경
그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170억쯤은 한잔 술값처럼 흐르는 것이었으니까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은 거셌다
도시는 그를 삼키려 했고
그는 웃으며 담배를 문 채 칼을 쥐었다
바닥으로부터 오른 자,
하지만 바닥을 잊지 않는 자
그의 발밑, 여전히 부산의 밤은 검게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