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봉철) 돈봉철의 사보이 호텔

네온이 흐릿한 밤이었다
남포동 골목 끝, 사보이 호텔 7층
거기서 돈봉철이 잔을 기울였다
술이 반쯤 남았을 때,
먼저 문을 연 건 흰 정장 입은 놈들이었다
차갑게 빛나는 금반지와
주머니 속 묵직한 쇠가 대화를 대신했다
"이제 끝낼 때다."
어디선가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흘렀다
돈봉철은 웃었다
칼이 먼저 말하는 동네에서
끝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 테이블 뒤집히는 소리
좁은 공간에서 몸이 부딪치는 순간,
칼이 그어졌고,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이 호텔은 내가 지킨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놈이 쓰러졌다
사보이 호텔의 밤은 길었다
그날 이후, 그곳의 룰은 바뀌었고
돈봉철의 이름은 더 선명해졌다
거리는 다시 조용해졌지만
그 밤을 본 자들은
입을 닫고,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