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뵹철) 불어버린 라면 사리

물이 너무 많았던 걸까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젓가락 끝에 매달린 면발은
탱탱한 기세를 잃고
흐물흐물 늘어져 있었다
한때는 팔팔 끓던 국물도
어느새 식어가고
양은 냄비 가장자리엔
기름 얼룩이 눌어붙었다
한 입 떠넣어 보지만
그 쫄깃함은 어디로 갔는지
입안 가득 퍼지는
무너진 식감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끓는 물 속 그 순간으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젓가락을 서둘러 들었을 텐데
하지만,
불어버린 라면 사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