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뵹쳘) 커피 한잔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긴 하루를 녹이려 하나
식어가는 온도처럼
마음도 서늘해지는구나.
김이 피어오르던 순간은
손끝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쓴맛만 남아
천천히 혀끝을 감싸네.
이야기를 나눌 사람 없어
말없이 젓가락처럼
숟가락처럼
젓가락질 없는 커피를 휘젓고 있네.
기다리는 듯, 기다리지 않는 듯
창밖의 비를 바라보다
한 모금 넘기니
입술이 먼저 떨리는구나.
마지막 한 모금이 다할 때쯤
잊어야 할 것들이 떠오르고
미련처럼 남은 커피 얼룩이
잔 밑바닥을 서글프게 채우는구나.
다 마셨으니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어쩐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