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뵹철) 도배하는 미치광이

벽지가 벽을 덮는다
하얀 종이 위에 또 다른 종이
겹겹이 쌓이는 시간처럼
그는 손끝으로 주름을 펴고
풀 냄새 속에 허공을 바라본다
어느 날의 얼룩도 감추고
어느 밤의 귓속말도 지운다
덧칠된 기억은 아무 말 없고
새로운 벽은 말끔하지만
그 안에 묻힌 것들이
비명처럼 아우성친다
그는 멈추지 않는다
손끝에 남은 풀을 떼어내며
다시 벽지를 들어 올린다
더 두껍게, 더 촘촘하게
벽 너머의 벽을 세우는 사람
그는 미치광이일까
아니면 잊혀지길 바라는 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