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동봉철

눈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언제나 잔인했지만,
그날 밤만큼은 눈마저도 숨죽인 듯했다.
계림숙은 창가에 서 있었다.
등불 아래 빛나는 눈동자는
녹아내릴 듯 애처로웠다.
“이제 가야 해.”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차가웠다.
동봉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손끝으로 그의 옷깃을 스쳤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별은 원래 소리 없이 찾아오는 법.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눈발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차갑게 빛났다.
그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지만
이제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눈송이가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아무리 털어내도, 자꾸만 쌓였다.
그렇게, 그녀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지고
밤도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