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설거지 재돌입

식탁 위엔 전쟁이 끝난 자국이 남아 있다.
기름기 번진 접시, 허기진 그릇,
젓가락들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고
컵에는 입술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다시 전장으로 나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고,
비눗방울들이 둥둥 떠오른다.
수세미를 쥐고 첫 번째 접시를 들어 올린다.
닦고, 헹구고, 쌓아 올리고.
비누 거품 속에서 나는 떠올린다.
아까의 웃음소리, 수저가 부딪히던 소리,
누군가는 반찬을 더 달라고 했고
누군가는 남은 국물을 떠먹었다.
그 순간은 따뜻했지만,
이제 남은 것은 더러운 그릇뿐이다.
물방울이 튄다. 손목을 적시고
소매 끝을 무겁게 만든다.
설거지는 끝이 없고,
한 접시를 치우면 또 한 접시가 기다린다.
마지막 컵을 헹구며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끝일까?
아니, 내일이 오면 다시 쌓이겠지.
식사는 다시 차려지고,
그릇들은 다시 더러워지고,
나는 또다시 설거지에 재돌입할 것이다.
이것은 끝이 없는 순환,
사랑과 노동이 만들어낸
영원한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