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벅철) 이사가고 싶네여

이사가고 싶네여
이 벽도, 이 창문도, 이 낡은 마루도
너무 오래 보아 버려서
이젠 눈길만 줘도 아프네여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녁 햇살이 벽을 타고 내려와
손등 위에 주름을 만들어요
그 주름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문득 멈추게 되네여
이 집에는 너무 많은 게 남아 있어요
떠난 사람의 그림자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도
손에 익어버린 문손잡이의 감촉도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이사가고 싶네여
이 모든 걸 두고 가면
나도 조금은 가벼워질까요
하지만 이 마음은 어쩌죠
짐은 문밖에 내려놓을 수 있어도
기억은 따라올 텐데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어요
그러면 혹시
나도 너를 잊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