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잔뜩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낡은 방 한구석,
창가에 내려앉은 먼지를 바라본다
빛이 스미면 반짝이지만
손을 대면 흩어질 뿐
계림숙,
너와 함께했던 시간도 그럴까
손에 닿을 듯하지만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것일까
이 방엔 아직도
네가 남긴 흔적들이 있다
오래된 책 사이에 끼워둔 메모,
기억을 머금은 바랜 사진 한 장
두만강을 건너기 직전 너가 건네준 빨간 머플러
나는 조용히 먼지를 털어내지만
이별의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네
잔뜩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흐릿한 네 얼굴이 스쳐 가고
나는 다시금
그날로 돌아가고 만다
계림숙,
우리는 얼마나 더
이렇게 서로를 떠올리며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