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빽가류햄의 기억상실증

어제까지 다이어트의 전사였건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기억이 사라졌다
샐러드의 풀내음은 희미해지고
단백질 쉐이크는 낯설기만 하다
그 대신 손에 들린 것은
기름에 튀긴 바삭함과
소스가 흐르는 육즙의 향연
한입, 두입, 멈출 수 없는 축제
칼로리는 숫자가 아닌 감각이 되고
거울 속 배는 팽귄처럼 둥글어졌다
마치 방시혁처럼,
폭식의 신이 내려앉은 듯
입가엔 미소, 속은 가득 찬 허공
그리고 그제야 떠오른다
아, 나는 다이어트 중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늦었다
기억은 돌아왔지만
폭식은 더 깊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