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제시켜알바

제시켜알바
밤이 되면 빛나는 간판 아래
검은 모자 눌러쓴 채
그는 나타났음
제시켜알바, 그렇게 불렸음
휴대폰 한 손, 이어폰 한 쪽
다리에는 오토바이 배달복 흔적
"뭐든 시켜, 내가 간다"
그 말은 주문이자 선언이었음
치킨, 떡볶이, 마라탕,
가끔은 냄새만으로도 포만감
비 오는 날엔 욕을 뱉고
눈 오는 날엔 조용히 이를 앙다물었음
그의 주머니엔 영수증이 쌓였고
시간표 대신 알림창이 울렸음
연애도, 휴일도, 새벽도
모두 '다음 배달 후'로 미뤄졌음
하지만 그 눈빛
딱 봐도 삶에 굴하지 않는 눈빛
빼앗기진 않아, 이 작은 수당조차
그건 자존심의 밑줄이었음
누구는 말했음
"겨우 알바 주제에"
그는 조용히 웃고 말았음
그 한마디로 세 끼는 벌었으니까
제시켜알바, 이름 없는 영웅
낡은 헬멧에 흐른 땀은
이 도시의 허기를 달래는 전설
그리고 오늘도 그는 달리고 있음
주문이 울리면, 대답은 하나
“네, 지금 출발합니다.”
그 한 마디에
삶이 배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