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철 감옥썰) 제5화. 백색 가루, 회색 교도소

제5화. 백색 가루, 회색 교도소
“봉철이, 그거 들어봤나? 3동에 ‘분유’ 돈다더라.”
‘분유’는 은어다. 당연히 아기 먹이는 그 분유가 아니다. 소량의 필로폰, 혹은 부정한 약물을 감옥 안에서 돌릴 때 쓰는 말이다. 겉으론 하얗고 순한 척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건 무게와 끝이 다르다.
그날도 그랬다. 생활동 청소 시간, 봉철은 소지품 검사를 피해 들어온 작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었다. 그 안엔 진짜 분유 반, 가짜 약물 반이 들어 있었고, 소문을 타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이거, 돌릴 생각 없어요. 그냥 보여주는 겁니다.”
팔짱은 아무 말 없이 봉철의 얼굴을 봤다. 말로는 부정하면서도, 이미 물건은 가공된 상태. 돌릴 마음이 없으면 왜 저렇게 섞고 소분하고, 포장까지 하겠는가.
“누구 연결했냐?”
“대전 깡마르. 4동에 있습니다. 약 좀 했던 놈이죠.”
‘깡마르’는 원래 간이 작고 말라서 붙은 별명인데, 필로폰 흡입 후 2주간 반미쳐 있다가 들어온 놈이다. 지금은 조용히 성경 읽는 척 하지만, 봉철은 알고 있었다. 걔가 성경책 속에 포장지 접는 법을 숨기고 있다는 걸.
“팔짱님, 저 그냥... 장사 좀 해보려는 겁니다. 큰 건 안 합니다. 딱 제 방에서만 돌릴 겁니다.”
팔짱은 눈을 감았다. 그건 허락이다.
그날 밤, 봉철은 베개 속에 감춰둔 ‘은봉투’ 하나를 꺼냈다. 안엔 소형 지퍼백, 커터칼, 1g씩 분할된 분유백. 진짜와 가짜를 반반 섞었다. 감옥 안에서 진짜가 뭐고 가짜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믿게 만드는 기술이다.
며칠 뒤, 봉철이 있는 6동에서 이상한 기침이 돌았다. 입이 바싹 마르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재소자들이 생겨났다. 몇 놈은 한밤중에 노래를 불렀고, 어떤 놈은 바닥에 누워 벽지를 핥았다.
하지만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 왜냐면 전부 빚을 졌기 때문이다. 빵삥으로 담배를 걸고, 라면을 걸고, 심지어는 가족 면회를 담보로 ‘분유’를 받은 놈들이다.
그리고 봉철은 어느새 ‘약장수’로 불렸다.
그날 이후, 그의 발밑엔 자잘한 왕국이 생겨났다. 물건을 나르는 놈, 돈을 걷는 놈, 욕을 대신 먹는 놈, 교도관에게 말 거는 ‘바람막이’까지.
하지만 봉철은 알고 있었다. 이건 오래 못 간다. 교도소 안에서 유통은 언제나 끝이 정해져 있다. 걸리든가, 쏟아지든가, 뒤통수 맞든가. 셋 중 하나다.
그래서 그는 다음 걸음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록’이었다.
제6화는 봉철이 몰래 구한 일기장과 펜을 통해, 교도소 내의 모든 거래와 인간 관계, 약의 흐름까지 ‘기록’하며 조직을 통제하는 에피소드임. 감옥이라는 생지옥 안에서 권력과 기억을 쥐는 자가 누구인가 결국 동봉철이었습니다.
신이라고 불린 사나이. 신이 된 사나의 동봉철의 재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기 형태의 단편소설.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