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 외전 2화: 사상구 창고의 남자

사상구 감전동.
지하철 역세권은 아니고, 공단 사이로 어중간히 껴 있는 동네.
돈본철은 거기서 중고가전 창고 일을 시작했다.
창고 사장은 ‘곽사장’이라 불렸다.
머리는 반쯤 빠졌고, 말끝마다 “형님~”을 붙이며 유하게 굴었지만,
손톱 끝은 기름때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형님, 뭐 일 어렵지 않습니다. 냉장고 들고, 세탁기 옮기고, 그거지예.”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몸이 고달플 뿐이었다.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삼양동 원룸촌으로 중고 냉장고를 배달하던 날.
내리막길에서 손수레가 덜컥 넘어지면서,
냉장고 문짝이 찌그러졌다.
곽사장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러곤 한참 뒤 말했다.
“형님, 예전엔 뭘로 살았다고 했지예?”
본철은 말없이 손바닥을 한 번 폈다가 쥐었다.
그 손바닥엔 여전히 주먹을 쥘 때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곽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본철은 처음으로 곽사장과 소주를 마셨다.
사상 IC 근처 야외포장마차.
소주 2병에 오징어채.
말은 적었고, 바람은 매캐했다.
“형님, 형님은 그래도 눈빛이 살아있다 아입니까.”
곽사장의 말에 본철은 무심하게 물었다.
“눈빛으론 밥 못 먹는다.”
하지만, 그날 이후 곽사장은
본철을 ‘본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 뒤엔 더 이상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아닌,
같이 냉장고를 나른 사람이라는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창고 일은 고됐지만,
본철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게
그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