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 외전 5화: 전화 한 통, 그리고 엄마의 이름

목요일 오후,
곽사장이 외근을 나가고
창고엔 본철 혼자였다.
스피커에서 트로트 라디오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고,
세탁기 위엔 정리 안 된 리모컨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유선 전화.
요즘은 잘 울리지 않는,
거의 창고 장식 같은 전화기.
본철은 수화기를 들었다.
“예, 사상중고입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조심스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돈본철 씨, 맞으신가요?”
본철은 얼어붙었다.
“예… 맞는데예.”
다시 정적.
수화기 너머에선 숨 고르는 소리가 났다.
“저… 혹시 김명숙 씨 아드님… 맞으세요?”
그 이름.
김명숙.
가장 오래된 이름.
세상에서 가장 먼저
본철을 안아줬던 이름.
“예… 맞습니다.”
목이 멘 채,
본철은 겨우 대답했다.
“어머니… 저희 요양원에 계셨어요.
3년 전 돌아가시기 전에,
계속 ‘본철이 올끼다’ 하시면서
문 앞에 앉아 계셨거든요.”
본철은 말이 없었다.
손이 굳어 수화기를 쥐고 있는지도 잊은 채였다.
“최근에 유품 정리하다가
작은 공책이 하나 나와서요.
번호가 하나 적혀 있길래… 혹시나 해서 전화를…”
“공책…이예?”
“네. 일기 같은 거였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
‘본철이는 착하다’
‘본철이는 돌아온다’
그런 문장이 적혀 있었어요.”
본철은 숨을 들이쉬었다.
목구멍 어딘가에서
말이 아닌 것들이 올라왔다.
뜨겁고 묵직한 것들이.
“혹시… 그 공책,
제가 가지러 가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시간 되실 때 천천히 오세요.
요양원은 기장 쪽이에요.”
전화를 끊은 뒤,
본철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라디오에서는
‘어머님 은혜’가 흐르고 있었다.
곽사장이 돌아왔을 땐
본철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다 쓰고 남은 수첩을 꺼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돈본철.
그 밑에,
조심스럽게
또 다른 이름을 적었다.
김명숙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