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봉철) 돈본철의 이불 기행

돈본철의 이불 기행
감방 안에도 밤은 오고,
밤이 오면 이불은 땅이 되었네.
돈본철은 그 땅 위를 걸었지,
숨어 있는 실밥과 바느질 틈을
지형도처럼 외우며.
이불 끝자락은 압구정이었고
그 반대편은 구로 공단,
그는 그 사이를 발끝으로 오갔네—
한 칸 한 칸이 옛 기억처럼 눌려졌지.
머리를 감싸던 부분은
엄마 손 냄새가 배어 있었고,
찢어진 구멍은
그가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초등학교 운동회였네.
그가 가장 오래 머물던 곳은
이불의 접힌 중심,
거기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감정의 무인도,
그는 거기서 하루를 묵고
이틀을 울었지.
토토뷰에서 누군가는 그를 미쳤다 했고
누군가는 또 천재라고 시인이라 불렀네.
하지만 그는 그저
보온과 망각 사이를 오가는
작은 순례자였네.
이불은 그의 길이었고,
길 위에서 그는 자유였네.
창문도, 출입구도 없던 그곳에서
돈본철은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떠나는 법을 배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