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 외전 시리즈 – 호스트바 시절 단편 6화 (복층 로맨스)

제목: “오피스텔 여왕과 복층 로맨스”
경기 남부, 판교의 한 신축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는 카드키를 대야만 작동했고, 복층 구조의 21평형은 채광이 완벽했다. 이곳에서 ‘오피스텔 여왕’이라 불리던 유정(29)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홀로 살고 있었다.
뷰 맛집. 커튼도 블라인드도 직접 고른,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갑자기 끼어든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또 다시 돈본철.
이번엔 ‘분양대행사 팀장’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첫 만남은 단순했다.
엘리베이터 앞.
큰 도면 파일을 안고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본철이 말을 건넸다.
“혹시 여기도 복층 구조 세대인가요?”
유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복층이에요.”
“와… 제가 지금 담당 중인 신축 현장에서도 이런 구조가 나오는데, 실제 입주자들 반응 궁금해서요. 요즘 복층이 인기긴 한데, 실제로 거주해보니 어떤가요?”
그녀는 조금 놀란 듯, 그래도 정중히 대답했다.
“전 나름 만족해요. 햇빛 잘 들고, 층고도 넓고요.”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면 구조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진짜 궁금해서… 아, 물론 회사 쪽에도 도움이 되고요.”
유정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풀렸다.
본철의 말투는 신뢰감을 주었고, 복층 구조에 대한 진지한 관찰은 전문가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는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그녀를 자극했다.
며칠 후, 유정은 그에게 커피를 내주며 말했다.
“팀장님, 다시 오셔도 돼요. 이 집 보고 뭐 더 얻어가는 거 있으면 좋잖아요.”
그리고, 연극은 시작되었다.
“이번에 강남에 들어가는 신축 건, 시행사가 좀 급하게 물건을 뺄 수도 있어서 내부 직원들한테 먼저 기회 주는 중인데… 사실 누나 같은 분이면 100% 프리미엄 붙어요.”
유정은 웃었다.
“제가 그걸 왜요?”
“혼자 살면서 이렇게 관리 잘하시고, 감각도 있고… 진짜 이런 분들한테 돌아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질 않으니까요. 그래서 솔직히, 누나한테는 그냥 내부가처럼 드릴 수 있어요. 계약금만 조금 걸어두면 돼요. 1,200만 원 정도.”
그날 밤, 둘은 복층 위 침실에서 와인을 마셨다.
본철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진짜 꿈꾸는 삶은 이런 거였어요. 누나 같은 사람과, 이렇게 높은 데서 불빛 아래서,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거.”
유정은 그의 팔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나… 오랜만에 누굴 믿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이틀 후, 본철은 사라졌다.
계약서는 위조였고, 시행사 직원 명함도 가짜였다.
유정은 뒤늦게 분양대행사에 연락했으나,
“그런 팀장은 없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검색도 안 됩니다.”
라는 말만 들었다.
은행에서 계좌추적을 신청했고,
경찰서에서는 익숙한 이름을 들려주었다.
“돈본철. 이미 같은 수법 피해자가 여럿 있어요.”
유정은 복층 계단에 주저앉았다.
캣타워 위에서 그녀의 고양이들이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창밖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엔 진짜인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아침 햇살이 복층 창을 뚫고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다시 커튼을 열었다.
본철은 지금 제주에 있다.
렌터카를 타고 바닷가를 바라보며,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엔 ‘예술작가’ 콘셉트였다.
“사진작가 김태수입니다. 삶의 잔상을 기록합니다. 제주의 빛과 그늘을 나눌 사람을 찾습니다.”
돈본철 그는 제주에서의 사기를 꿈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