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 외전 시리즈 – 호스트바 시절 단편 7화 (완결) 제주도에서

제목: “제주 예술촌과 작가 사칭 사건”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바람이 깊은 골목에 자리한 ‘해한 예술촌’.
세월을 품은 돌담과 낡은 통유리 창문, 그리고 그 안에서 낮은 숨결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린넨 셔츠에 헝클어진 머리, 목에 작은 필름카메라를 걸친 남자.
이름은 김태수 작가, 그러나 실상은 또 한 번 위장을 꾀한 돈본철이었다.
그는 ‘빛을 찍는 자’로 위장했다.
“작업 주제는 제주 이민자들의 얼굴입니다. 이곳에 흘러온 이유, 남겨진 풍경… 그걸 기록하려고요.”
예술촌 사람들은 처음엔 경계했지만, 그의 말에는 틈이 없었다.
‘국제 다큐멘터리 공모전 참가 예정’, ‘서울 아트페어 전시 협의 중’, ‘카메라 잡지 기고 경험’—모두 사실인 듯 보였고, 아무도 그의 경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본철의 눈에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서지윤 화가(45), 수묵화 작가이자 예술촌 기획운영자.”
조용하고, 예술에 진심이며, 무엇보다 순수했다.
본철은 연기자가 아닌, 예술가처럼 접근했다.
“지윤 작가님의 작품엔 ‘시간의 바람’이 있어요. 보고 있으면, 내가 멈춘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저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거든요.”
지윤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거의 처음이에요.”
둘은 ‘예술적 교감’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가까워졌고, 어느 날 그는 말했다.
“아트페어 전시비가 막혔어요. 전시장 계약금 450만 원. 이게 안 되면, 그냥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지윤은 망설였다.
그녀는 그 돈을 미술교육 프로젝트 지원금으로 아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본철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했다.
“내 사진 중에, 가장 잘 찍힌 건 지윤 작가님이에요.
그날, 저녁 햇살 아래 수묵 붓을 드신 모습…
그게 제 작품의 중심이에요. 그걸, 전시할 수 없게 되면 전 의미가 없어요.”
지윤은 조용히 이체했다.
“전 믿어요. 예술은 결국, 누굴 살리는 힘이 있다고.”
본철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 힘으로, 이번엔 정말 갚고 싶어요.”
그리고 4일 후, 김태수 작가는 사라졌다.
예술촌엔 빈 작업실만 남았고, 전시장 측에는 계약된 기록도 없었다.
그가 남긴 SNS 계정도 삭제되었다.
지윤은 조용히 그가 남기고 간 낡은 필름카메라를 열었다.
거기엔 단 한 롤, 현상되지 않은 필름이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숍에 들러 인화를 부탁했고, 며칠 뒤 현상된 사진을 받았다.
첫 장엔 바닷가에서 등을 돌린 자신의 모습.
두 번째 장엔 작업실에서 고개 숙인 뒷모습.
세 번째, 그녀가 웃고 있는 정면 사진.
마지막 장엔,
종이에 적힌 메모가 있었다. 사진 위에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
“지윤님,
당신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습니다.
그게 진짜였다면, 그것만은 진심이었습니다.
— 본철 드림”
그리고, 그날 밤.
본철은 마산행 야간 버스를 타고 있었다.
마산에는 언제든지 본철이 원하면 바로 옷을 벗기고 성교를 나눌수 있는 함바집 아주머니가 있다.
옆자리엔 잡지 한 권과 중고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다음 캐릭터는 ‘해운회사 물류실 직원’.
목표는 퇴직 예정 직장 동료의 퇴직금 예치금.
창밖으로 어둠이 밀려오고, 조용히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가면은 벗는 게 아니라, 바꾸는 거지.”
[외전 완결]
돈본철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어딘가, 다른 이름과 얼굴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에게 속았던 이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보다
‘한때 누군가를 믿었던 그 시간’을 더 후회했다.
이것이 돈본철의 방식이었다.
사랑처럼, 예술처럼, 사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