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봉철) 「먼저 이불 속으로」

가로등은 술에 취한 채
골목을 비스듬히 누르고 있었고
나는 구겨진 셔츠에 묻은
소주 얼룩을 핥으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집으로
누군가는 작업장으로
누군가는… 아무 데도 아닌 곳으로
밤은 늘 그러했다
나보다 먼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 밤이었다
텅 빈 방에 불을 켜면
먼지들이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들에게
죄처럼 웅크린 등을 내주었다
목이 젖지 않은 베개는
늘 거짓말을 말했고
나는 오늘도
다리를 오므리고
꿈도 없이 잠에 떨어졌다
먼저 이불 속으로 들어간 건
사람이 아니라,
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