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철의 이별 실화) 제1화: 두만강 언덕의 바람

제1화: 두만강 언덕의 바람
두만강 언덕에 봄이 내려앉았다. 아직 얼음이 다 녹지 않은 강물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멀리서 들려오는 철새들의 울음이 어딘가 쓸쓸하였다.
그 언덕 위, 군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동봉철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고, 그 종이 위에는 낡은 조선노동당의 붉은 도장이 박혀 있었다. ‘남조선 위장침투 명령서’—아무리 눈을 감고 외면하려 해도, 붉은 인장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철이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뒤에서 불러오는 목소리, 그것은 계림숙이었다. 그녀는 산책하러 나간다는 연락을 받고 나온 듯, 평상복 차림이었고 그 눈빛엔 평소와 다름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봄바람에 찰랑거리며 흩날렸고, 그의 눈 앞에서 그것은 한 송이의 들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봉철은 그 아름다움을 차마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림숙아… 우리, 당분간 보지 말자.”
“뭐라고? 무슨 말이야 그게… 방금 뭐라고 했어?”
그녀가 다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봉철은 순간 흔들렸지만, 다시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나는… 남조선으로 내려가야 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소리냐고…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무슨 임무야 그게? 왜? 왜 나한텐 말도 없이!”
림숙은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봉철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것은 차가웠다. 강물처럼, 북방의 바람처럼.
“널 지키고 싶었어. 너만큼은 이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고 싶었어.”
“그럼 가지 마! 가지 마, 봉철아… 제발…”
그는 끝내 등을 돌렸다.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흐느낌은 두만강의 바람 속으로 묻혀버렸다.
그 언덕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봄은 모르는 척 다시 피어났다.
그날 이후, 계림숙은 그가 남긴 낡은 군번줄 하나만을 품에 안고 살았다.
그리고 동봉철은 남쪽의 공공기관 어딘가에, 다른 이름으로 취업신청서를 냈다.
그의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