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철의 이별 실화) 제2화: 한국, 스파이의 그림자

서울의 빌딩 숲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쳤고, 그 속에서 ‘박태민’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입사한 동봉철은 마치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배치된 곳은 ‘국가교통정보통합센터’. 대한민국 내 모든 도로망과 차량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감시·분석하는 중추 기관이었다. 겉으론 단순한 교통 행정 업무처럼 보였지만, 봉철이 받은 명령은 분명했다.
“남조선의 SOC 기반 전산망 취약점을 수집하고, 필요 시 교란 명령을 수행하라.”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교통 흐름 데이터를 분석하며, 봉철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파일을 하나 내려받을 때에도, 회선 트래픽을 조회할 때에도 그 손끝에는 천릿길처럼 긴 신중함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인간적인 감각에 물들어갔다. 같은 팀의 성실한 사무원 장현지, 대리급으로 자주 야근을 도와주던 유성호 과장, 자판기 앞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농담하던 경비 아저씨까지… 그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웃음 하나가 봉철의 기억에 남았다.
“박 대리님, 오늘도 늦게 퇴근하시네요. 일 그만 좀 끌어안고 사세요.”
장현지의 웃음 섞인 말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죄책감이 피처럼 고여갔다.
임무 수행 중 북에 통신 보고를 보낼 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지 못했다.
타자의 소리만 들리고, 보고서는 건조하게 요약되었다.
“목표 기관 내부 진입 완료. 접근 권한 확보. 보안 계정은 일회성으로 활용 중.”
그의 말은 점점 말라갔다. 마음속에선 림숙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가지 마… 제발…”
그는 몇 번이고 핸드폰을 열어, 새 번호로 전화를 걸까 망설였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림숙도, 자신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북에서 그를 버리지 않는 한, 이 이중생활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날, 그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던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 손을 넣어 막았다.
문틈 사이로 익숙한 향기가 들어왔다. 봉철은 숨이 멎을 뻔했다.
“박태민 씨죠? 저… 혹시 두만강 쪽에서 살던 적 있으세요?”
그녀였다. 계림숙.
도저히 서울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던 그녀가,
이제는 같은 공기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