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이별 실화) 제3화: 진실의 끝, 그리고 이별

제3화: 진실의 끝, 그리고 이별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엘리베이터 안, 봉철은 말이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심장이 폭발할 듯 뛰었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계림숙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엔 확신이 있었다.
“처음 본 순간 알아봤어요. 눈빛이… 예전 그대로였거든.”
봉철은 무너질 듯 고개를 숙였다.
“림숙아…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자원봉사 겸, 단기 계약직이에요. 다행인지, 우연인지 몰라도 교통정보센터에서 채용이 있더라고요.”
그녀는 웃었지만, 눈가엔 오래된 상처가 떠 있었다.
봉철은 그녀를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드디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진실을 꺼냈다.
“나는… 북쪽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남조선에 내려온 순간부터,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이젠 명령도, 충성도 아무 의미 없어졌다.”
계림숙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두려워. 너를 다시 만난 것도… 내가 또 너를 위험에 빠뜨릴까 봐.”
“이미 난 위험에 들어와 있어. 널 다시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봉철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오랜 겨울을 지나 다시 온 봄처럼 그를 감쌌다.
“도망치자, 림숙아. 이 모든 걸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북도 남도 없는, 사람답게 숨 쉬며 살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차가운 진동음이 밤공기 속을 가르고 울렸다.
“최종지령: 대상은 이탈 조짐. 제거 명령 하달. 회수 대상은 제거 후 처리.”
그 메시지는 무언의 사형선고였다.
봉철은 마지막으로 림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구나. 널 기다린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널 다시 찾아온 거였는데…”
그녀가 뒤돌아서려는 순간, 봉철은 조용히 그녀의 뒤에서 안았다.
“널 지키기 위해, 난 사라질게. 이제 너 혼자라도 살아. 살아남아서, 나를 잊어줘.”
그는 그녀의 손에 흰 봉투 하나를 쥐어주고, 그대로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날 이후, 계림숙은 다시는 봉철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봉투 안에는, 그의 본명과 남조선에서의 모든 진실이 담긴 일기장 한 권과,
작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두만강 언덕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그날의 봉철.
그리고 사진 뒤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너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지만, 너만은 내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