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이별 실화) 제5화: 그 봄, 계림숙 이야기

서울은 너무 컸다.
그리고 너무 빨랐다.
계림숙은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북에서 지켜온 신념은 붕괴했고, 사랑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녹아 사라졌다. 봉철이 떠난 후, 그녀는 그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찾으러 왔다.
처음엔 단순한 자원봉사였다. 적십자 추천으로 참여한 남북 교류 행사, 그중 하나가 ‘국가교통정보센터’의 보조직 채용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시 그를 보았다.
“박태민…?”
그는 처음엔 모르는 척했다. 표정도, 말투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여전히 두만강 언덕의 바람이 살고 있었다.
옥상에서 마주한 그는, 마치 영혼 없이 웃었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며칠 뒤, 그는 사라졌다.
사무실엔 복귀하지 않았고, 그의 책상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건 구석에 쌓여 있던 노트 한 권.
거기엔 이런 글귀가 연필로 적혀 있었다.
“나는 남과 북 사이의 그늘이 되어 버렸다.
너는 빛으로 남아줘.”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매년 봄이면 한강 근처에 피는 개나리 밭에 다녀갔다.
봉철이 그리던 ‘따뜻한 남쪽의 봄’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봄, 그녀는 우체통 속에서 낯선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소인은 백령도 우편소.
글씨는 흐릿했지만 확실히 그였다. 그 속엔 한 장의 바다 사진, 그리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너의 봄을 지켜보고 있다.”
그날 밤, 계림숙은 꿈을 꾸었다.
두만강 언덕에 봄이 오고,
봉철이 다시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던 꿈.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아니, 살아 있으려 한다.
그리고 그녀도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려 한다.
엽서 뒷면에는 돈본철이 쓴 첨언이 있었다.
토토뷰라는 싸이트에 놀러와. 난 요즘 여기서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