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돈본철) 돈본철의 양헤는 밤

어둠이 저문 골목,
돈본철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네온빛 허공에 흩어지는 이름 없는 꿈처럼
그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술기운에 젖은 입술로
누군가를 불러본다,
이미 떠나간 얼굴들을.
응답 없는 밤만이,
허망하게 귓가를 때린다.
양헤는 밤,
이루어지지 못한 약속들이
가로등 아래 쌓여간다.
돌이킬 수 없는 발자국을 따라
본철은 조용히 웃는다.
텅 빈 주머니 속에서
차가운 동전 하나가 구르고,
가슴 한켠에서는
늦은 회한이 삐걱거린다.
양헤는 밤이 깊어갈수록,
본철은 더욱 고요히 사라진다.
누군가의 기억에도,
자신의 기억에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