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수감 외전: 슬기로운 감옥생활》 제1화 – 리모컨은 권력이다

수감 17일째, 나는 강력 2방으로 이감되었다.
이 방은 인원 6명. 죄명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짧지 않은 징역을 받은 자들이다.
강간, 살인미수, 강도, 그리고 ‘누적폭력 9범’이라 불리는 인물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 방의 공기는 그 어떤 흉악성보다 더 조용하고 날카로운 게 하나 있었다.
“TV 리모컨.”
이 방에선 리모컨을 다루는 자를 **‘리장’**이라 불렀다.
‘리모컨 장악자’의 줄임말이다.
그 자리는 방장도, 목도, 심지어 최고 짬도 건드릴 수 없었다.
리모컨이 바뀌면, 그건 ‘방의 기후’가 바뀌는 것과 같았고
누구도 쉽게 그 손을 바꾸지 못했다.
이 방의 리장은 **‘오송’**이라는 사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키는 작고, 허리는 휘었지만,
리모컨을 잡을 땐 마치 군 장교처럼 단단하게 팔을 접고 앉았다.
오송은 규칙이 있었다.
-
오전엔 불교방송,
-
낮 12시엔 KBS 뉴스,
-
오후엔 ‘가요무대’ 재방,
-
저녁 8시는 반드시 지상파 뉴스,
-
이후엔 그날의 날씨와 건강 정보 프로그램만 허용했다.
심지어 스포츠 중계는 금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옥이 감정 따라가면 다 터져. 이 안에서 승패 따지다간 진짜 싸움 나. 뉴스는 중립이다.”
그 규칙은 사실, 리장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과거 수감 당시 어느 날 야구 경기를 보다가
본인의 고향 팀이 대패하는 바람에 헬스볼을 던져 TV를 박살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독방 15일.
그 뒤로 그는 뉴스와 불교방송만 본다.
나는 말없이 며칠을 지켜봤다.
리장이 식사 직후 리모컨을 정좌 자세로 들고
뉴스 시그널 소리를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의식 같았다.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신입 수감자 하나가 들어왔다.
젊은 애, 이름은 몰라도 별명은 **‘엘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입방하자마자 첫 마디가 “엘지 오늘 경기 하나요?”였으니까.
감옥에서 스포츠 팀 이름으로 불리는 놈치고 오래 가는 놈 없다.
엘지는 리장의 TV 사용을 견디지 못했다.
“형님들, 오늘 MBC 드라마 하는 날인데 그거나 틀면 안 됩니까?”
말투는 공손했지만, 리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정확히 6초 후, 눈을 떴다.
“너, 들어온 지 며칠이냐.”
“오늘이 3일째입니다.”
“감방엔 목욕도 3일 차부터야.
너 지금 TV 틀겠다는 건, 나랑 씻겠다는 거지?”
엘지는 다음날부터 침묵했다.
하지만 불만은 이불 속에서 자라난다.
그날 저녁, 리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엘지가 슬쩍 리모컨을 들었다.
“이 기회에… KBO 보자고...”
그 순간.
나는 고개를 숙였다.
반면, 다른 방 세 명은 자리에서 자동으로 일어났다.
방목이 조용히 말했다.
“리모컨은 건드는 게 아니야.
그건 이 방의 질서고, 질서는 우리 숨통이거든.”
엘지는 다음날, 교도관에게 전출 요청을 했다.
이유는 “심리적 스트레스”라고 썼지만,
진짜 이유는 방장보다 무서운 리장의 통제력 때문이었다.
며칠 뒤, 리장은 나에게 리모컨을 쥐어줬다.
“본철이 너, 눈치 있는 놈이야. 이 방의 온도를 아는 놈이 리모컨을 쥐는 거야.”
나는 뉴스 시그널이 시작되자,
조용히 소리를 한 칸 줄이고,
리장이 좋아하는 기상캐스터가 나올 시간에 음량을 살짝 높였다.
그날 밤, 내 베개 밑엔
누군가 몰래 준 커피믹스 두 봉지가 있었다.
감옥에서 가장 강한 자는 누구인가?
말을 많이 하는 자가 아니라,
‘리모컨의 볼륨을 한 칸 낮출 줄 아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