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수감 외전: 슬기로운 감옥생활》 제2화 – 담배, 그 은밀한 화폐

감옥 안에선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현찰이 안 돈다는 말이 맞겠다.
이 안에서 진짜 가치는 단 하나.
담배.
담배 한 갑은 ‘돈’ 그 자체다.
구매는 ‘매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교도소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제한적이다.
일주일에 두 갑.
그 이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흡연자든 아니든 담배는 반드시 매점에서 산다.
왜?
그건 화폐니까.
내가 있던 3동 4호실에서는 담배를 ‘단위’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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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하나 = 반 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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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볼 대여 = 한 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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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한 장 = 1/4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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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시간 3분 연장 = 두 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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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청소 대행 = 세 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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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대필 = 다섯 개비 (특급 고수 한정)
그리고 거래는 대부분 은밀히 이뤄진다.
내가 그 룰을 처음 경험한 건 수감 22일째였다.
그날, 구치소에서 외부 손편지를 받았는데, 내용이 이랬다.
“본철 씨, 저희 노무 법인 쪽에서 위임계 처리 완료되었고요,
대신 답신은 종이 아껴서 해주세요.”
문제는, 볼펜이 없었다.
감방에선 자살 방지 이유로 볼펜심도 제한된다.
따라서 ‘대필’이란 게 존재했다.
방 안의 글 잘 쓰는 수형자 ‘윤필’이 있었다.
이름도 진짜 윤필이었다.
윤필이 말했다.
“대필? 반갑네. 요즘 시 한 편 안 썼더니 손이 근질했어.”
“시…가 아니라 행정문건인데요…”
“그래도 문장은 살아있어야지.”
그는 내 말을 듣고 A4 한 장에 한자 반,
겸손, 단호함,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진정성까지 담아 답신을 써줬다.
대신, 나는 그에게 담배 세 개비를 건넸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문장의 감성은, 3개비 짜리 정도는 돼야지.”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나는 담배 밀거래라는 세계를 보게 된다.
‘방터’라는 별명을 가진 수형자 하나가 있었다.
얘는 말 그대로 방을 터는 놈이다.
누군가 교도관 면담 간 사이, 그 사람의 매점 봉지를 까서
담배 한 개비만 훔친다.
그것도 꼭 필터에서 반 마디만 잘라서 숨겨 놓는다.
왜냐, 필터의 치흔(이빨 자국)이 없으면 원소유자가 모른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방 안 한 명이 소리친다.
“내 담배 누가 깠어?! 두 개비 줄었어!”
방터는 침묵했지만,
옆자리 ‘구청’이라는 짬 높은 수형자가
그의 슬리퍼 밑창 안에서 반 개비를 꺼낸다.
“이건 내가 어제 필터를 조금 눌러놨던 거다.
이 자국, 나밖에 못 낸다.”
그날 밤, 방터는 조용히 교도관실로 자진신고하며 자진전출을 신청했다.
이유는 “심리적 불안”
실제 이유는 “담배 한 개비로 방에서 죽을 뻔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곳은 담배가 곧 신용이고, 신용은 생명과 직결된다.
심지어 ‘비흡연자’들도 담배를 모은다.
왜냐면 그게 ‘숨 쉴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라면을 달라, 편지를 써달라, 물을 바꿔달라—
감방 안의 모든 교환과 배려는 결국 “개비로 계산된다.”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윤필이 내게 해준 말.
“밖에선 지폐에 얼굴이 있지?
여기선 필터에 표정이 있어.
슬쩍 누르면 화난 놈이고, 깨물려 있으면 불안한 놈이고,
꼭 쥐었다 풀었으면… 그건 인생에 미련이 남은 놈이야.”
감옥에서 가장 위험한 건 불이 아니라,
불이 붙은 담배다.
그건 ‘가치’고, 때로는 ‘명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