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수감 외전: 슬기로운 감옥생활》 제3화 – 의무실은 법정이다

감옥에서 가장 어려운 곳은
운동장도 아니고, 접견실도 아니다.
의무실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아픈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라,
‘아프다고 주장하는 놈들을 심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감 36일째에 열이 났다.
잠을 자는데, 이불이 물에 젖은 것처럼 축축했고
목이 칼날처럼 갈라졌다.
체온이 38.3도였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의무계 신청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의무실은 매일 아침 8시,
담당 교도관에게 A4 절반짜리 종이 한 장을 제출하는 것으로 신청한다.
하지만 그 종이를 받는 교도관은 늘 이렇게 말한다.
“니가 열이 있든 말든,
그걸 판단하는 건 내가 아니고,
의무실 간호사도 아니고,
‘대기표 뽑은 놈 순서’야.”
그날 아침, 나는 7번째였다.
앞에 있는 6명은 다음과 같았다.
-
허리 통증으로 8개월째 진통제 요청 중인 ‘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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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3일마다 나오는 ‘마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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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아프고 인생도 아픈 ‘치아’
-
살이 쪘다고 주장하며 변비약을 타는 ‘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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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가고 싶어 매일 신청하는 ‘산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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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멀쩡한데, 약을 받아서 담배랑 바꾸려는 ‘약장수’
나는 그들 뒤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호흡은 뜨거웠지만
정작 의무실 간호사의 시선은 내 체온계 수치보다
내 말투와 태도를 먼저 스캔하고 있었다.
“왜 신청하셨어요?”
“열이 좀 나고, 목이 많이 부어서요.”
“해열제는 지난주에 받으셨죠?”
“그건 그때 복용했고, 지금은…”
“그럼 지금 다시 신청하면 **‘상습요구’**로 기록됩니다.”
“…그럼 진료 안 되는 건가요?”
그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반항’ 됩니다.”
감방은 언제나 그렇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
너는 죄인이 아니라, 의심 받는 사람이 된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말한다.
“그럼 오늘은 물 많이 드시고, 내일 상태 봐서 다시 오세요.
내일도 열 있으면… 의무계 쓰세요.”
이건 ‘아직 아픈 게 증명되지 않았다’는 선고다.
그날 밤,
같은 방의 ‘마목’이라는 수형자가 나에게 말했다.
“의무실은 병원이 아니야.
‘기록실’이자 ‘심문실’이고, 때로는 ‘조정실’이야.
니가 감기약을 받아내려면
정말 아프든가, 아니면 엄청 말랄하게 연기를 하든가 둘 중 하나야.”
“진짜 아파도 안 통한다는 거예요?”
“진짜 아픈 놈일수록 조용하지.
여기선 크게 말하는 놈이 약은 타.
하지만… 그 놈은 결국 약을 쌓아두고 팔아.”
며칠 뒤, 나보다 더 아픈 ‘치아’는 결국 진통제 대신 벌점 1점을 받았다.
의무실에서 큰소리로 항의했기 때문이다.
항의의 이유는 간단했다.
“치통인데 왜 변비약을 주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교도관은 이렇게 적었다.
“의무실 간호사에게 반복적 항의 및 치료 불신.
위계에 대한 인식 결여.”
그 문장은 한 줄이었지만,
그 사람의 죄명보다 더 무서운 낙인이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감옥에선 열이 나면 참는다.
감기면 자면 된다.
진짜 아프면 교도관이 부른다.
그땐… 침대에 실려 가는 거니까.
의무실은 병원이 아니라,
조용히 말해야 살 수 있는
작은 재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