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수감 외전: 슬기로운 감옥생활》 제4화 – 깔개와 베개의 정치학

감옥엔 ‘침대’가 없다.
그러나 누가 어디서 자느냐는,
침대 몇 층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감방엔 깔개 두 장, 베개 하나,
이게 곧 존재의 부피다.
나는 서울구치소 9동 3층 6호실,
이른바 ‘구삼육방’에 배정된 지 사흘째 되는 날,
처음으로 **‘깔개 정치’**를 실감했다.
그날 밤, 내 깔개가 살짝 방장 자리 근처로 밀려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슬쩍 눕다가 그만 베개가 방장의 베개와 겹쳤다.
다음 순간, 방장이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본철이, 니 베개가... 내 생각보다 크네?”
문제는 베개가 아니라 위치였다.
감방에선 자는 위치가 곧 위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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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중앙: 보통 ‘방장’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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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옆: ‘방목’이나 짬 있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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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근처: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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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풍기 아래: 견딜 수 없는 자
이건 문서화된 규칙이 없다.
그러나 누구도 어기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방 중앙에서 두 칸 아래로 내려갔다.
그 자리에서 자려는데,
옆에 누운 ‘포항’이라는 수형자가 말했다.
“본철씨, 여기 자면...
아침에 화장실 다녀온 사람들 발에 베개가 밟힐 수 있어요.
그냥 참고 자요.”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베개를 조용히 옷 안에 넣고 잤다.
그날 새벽, 꿈속에서
누군가 내 배 위에 올라 앉은 느낌이 들었다.
이불도 위계가 있다.
보통 담요 한 장, 깔개 한 장이 전부지만,
‘짬 높은 자’에겐 세 장이 허용된다.
세 번째 담요는 정해진 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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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에 두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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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더 높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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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아예 다리 위에 올려 존엄성을 연출한다.
한 번은 ‘목포’라는 수형자가
이불을 네 장 겹쳐 덮고 있는 걸 보고
교도관이 물었다.
“이불 왜 그렇게 많이 쓰나?”
그는 대답했다.
“잠버릇이 안 좋아서요.”
그러자 교도관은 웃지 않았다.
“그럼 짬이 좋나보지.”
감방에선 베개 높이가 곧 존재감이다.
높을수록 존재가 커 보이고,
낮을수록 겸손해 보인다.
그러나 너무 낮으면 무시당한다.
한 수형자는 매일 옷을 말아서 베개처럼 썼다.
그걸 본 방장이 말했다.
“저거... 불편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존재를 지우고 싶다는 뜻이야.”
나는 이후, 깔개를 일정 각도로 접고,
베개는 딱 손목만큼 높게 올려서 자는 법을 배웠다.
그건 누군가에게 ‘비굴하지 않으면서, 튀지 않는 신호’였다.
하루는 막내 수형자 하나가
밤에 몸을 뒤척이다가
실수로 방장의 발등 위에 이불을 덮었다.
그다음 날, 그 수형자는 다른 방으로 자진 전출했다.
이불 하나가 만든 사소한 접촉이
감옥에선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접견 때 가족이 묻더라.
“거긴 불편하지 않아?”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여긴 바닥은 딱딱한데, 자존심은 더 딱딱해.
그래서 깔개 하나도 신중하게 펴야 돼.”
감옥은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잠을 연기하는 곳이다.
몸은 누워도, 깔개와 베개는 늘 말하고 있다.
‘너는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