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동봉철 연대기: 제1화. 아스팔트 위의 변호사

부산 신항 입구.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아침, 화물연대 노조의 트럭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줄지어 서 있었다. 흰 입김이 아스팔트 위로 흩어지고, 파업 조끼를 입은 기사들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뚫고 울려 퍼졌다.
“우리도 사람이다! 최소한의 운임을 보장하라!”
경찰은 헬멧을 쓰고 진압대열을 짰고, 방송차에서는 ‘불법집회 해산 요청’이 반복되었다. 곧 들이닥칠 진압을 예상한 듯, 기사들은 팔짱을 끼고 도로에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전화기 너머로 가족에게 말했다.
“오늘 잡혀가도, 내 자식은 굶기지 말아야지.”
그때였다.
현장으로 검은 가방 하나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짧은 코트, 약간 휘어진 안경테, 종이서류가 삐죽 튀어나온 가방. 누구냐고 묻는 경찰에게 그는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변호사 동봉철입니다. 이 집회, 변호인 자격으로 참관하겠습니다.”
경찰이 눈을 흘겼다.
“지금 불법 점거 상황입니다. 귀하도 피의자 될 수 있습니다.”
봉철은 웃으며 답했다.
“그럼 저 먼저 연행하십시오. 노동자가 목소리 낼 공간이 없다면, 변호사는 그 자리에 서야 하니까요.”
봉철은 트럭 위로 올라갔다. 확성기를 넘겨받아 목소리를 냈다.
“여러분, 형법 185조. 일반교통방해죄, 자주 들으셨죠? 그러나 판례는 이 조항이 ‘현저한 교통장애’ 없이는 성립 안 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상황, 정당한 요구에 대한 과잉 적용입니다.”
경찰 간부가 무전기로 명령을 내렸다. “1열 전진.”
진압이 시작되자, 봉철은 트럭 앞에 양팔을 벌려 섰다.
“이들을 치우려면, 나부터 치우십시오!”
카메라 기자들이 셔터를 눌렀고, 경찰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자 노조원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저 사람이 진짜 변호사 맞나?”
또 다른 이가 대답했다.
“맞다. 지난달엔 울산에서 정리해고 소송도 혼자 맡았다더라.”
봉철은 그날 총 9명의 연행자를 따라 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바닥에 앉아 모두의 피의자신문조서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말했다.
“노동자는 죄가 아닙니다. 제 변호는 싸구려지만, 진심은 프리미엄입니다.”
밤늦게 유치장 면회가 끝난 뒤, 봉철은 지친 몸을 이끌고 편의점 앞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아스팔트는 따뜻하진 않았지만… 사람이 서야 할 자리는 거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