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동봉철 연대기: 제5화. 밥값을 아는 남자

경기 광명의 한 택배터미널.
검은색 조끼를 입은 택배기사들이 이른 새벽부터 바닥에 앉아 노란 박스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의 공식 근무 시작 전, ‘무급’ 시간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누구는 땀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시간도 돈이라면… 우린 부자일 텐데 말입니다.”
오전 3시 20분.
동봉철 변호사는 반사 조끼를 입고, 택배기사 박인수 씨 옆에서 삐삐 소리를 따라 분류표를 확인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틀째 터미널에 ‘위장 체험’ 중이었다.
“오전 3시부터 7시까지 이 분류작업… 정식 근로시간은 아니라고요?”
박 씨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그냥 ‘마음의 준비시간’이라고 부르죠. 회사는 강요한 적 없댑니다. 근데 안 하면 그날 물량이 지옥이에요.”
그날 밤, 봉철은 택배노조 위원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작업 영상과 시간대별 GPS 로그, 문자 기록 등을 모아 한 장의 도표로 설명했다.
“이건 마음이 아니라 노동입니다.
땀에는 의도가 없고, 시간엔 대가가 필요합니다.”
회사 측 노무사는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 뭘 원하시는 거죠?”
봉철은 두 손으로 책상을 치며 말했다.
“단순합니다. 이분들 하루 일과 중에, 자기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30분만 보장해달라는 겁니다.
그걸 위해선 분류 작업도, 택배도, 사람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한 달 후, 국회 청문회.
택배 분류 무급노동 실태가 언론 보도를 타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물류회사 3사 공동 합의안이 나왔다.
분류 작업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포함
1일 30분 유급 휴게시간 보장
전담 인력 단계적 투입
그날 이후 박 씨는 정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근무는 오전 3시부터입니다.”
이전까지는 ‘몰래 일하다가’ 일당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시간에 이름이 붙었다.
며칠 뒤, 박 씨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봉철을 찾아왔다.
새벽 일을 끝낸 그가 말했다.
“이 도시락 값은 제가 번 돈으로 샀습니다.
변호사님… 이게 진짜 밥값 아닙니까?”
봉철은 젓가락을 들고 웃었다.
“네, 이 밥엔 노동이 있고, 존엄이 있습니다.”
그날 일기장에 봉철은 이렇게 적었다.
“사람은 밥으로 산다.
하지만 법은 그 밥이 정당하게 얻어졌을 때만, 진짜 의미를 갖는다.
오늘도 나는 한 사람의 밥값을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