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동봉철 연대기: 제6화. 밀린 월급과 밀린 청춘

서울 성수동, 한창 유행하는 ‘스타트업 거리’.
그 골목 안, 회색 철문 너머로 이름도 낯선 테크 스타트업이 자리잡고 있었다.
슬로건은 “혁신은 우리가 만든다”였고, 벽에는 퇴근 후 맥주 마시는 사진들이 포스터처럼 붙어 있었다.
“저희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요. 자유롭고, 수평적이고, 창의적이죠.”
회사의 대표, 김모 씨는 면접 때마다 이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회사엔 한 가지 고질병이 있었으니—
6개월치 임금 미지급.
“변호사님, 월급이 밀렸어요.”
청년노동자 송해진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봉철을 찾아왔다.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마케터로, 그 회사에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주말 출근도 흔했다.
그런데 월급은 “조금만 기다려줘”라는 말만 반복되었다.
“회사는 투자 유치만 되면 다 줄 거라고 했어요.
저희가 이해심이 부족한 걸까요?”
봉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이해가 아니라 착취입니다. 창의적인 말로 포장된 아주 전통적인 불법이죠.”
그는 회사의 내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확보했고, 대표가 팀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스크린에 띄웠다.
“지금은 모두가 버틸 시간입니다.
가족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죠?”
봉철은 이 문장을 캡처해 유튜브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채’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방송 인터뷰에서 차분히 말했다.
“가족이라면서 월급은 안 줍니다.
도대체 어떤 가족이 밥 굶깁니까?”
며칠 후, 사태는 커졌다.
해당 회사의 SNS 계정은 비난 댓글로 뒤덮였고, IT 업계 커뮤니티에는 “스타트업 노예계약 리스트”라는 게시글이 떠돌았다.
결국 고용노동청이 임금체불 긴급 조사에 착수했고, 회사는 체불 사실을 인정하며 뒤늦게 분할지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봉철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청년노동자 7명을 원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고의적인 임금지급 회피”라는 판결로 위자료를 포함한 지급명령을 내렸다.
송해진 씨는 판결문을 들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제… 부모님께 죄송하지 않게 됐어요.
알바 안 해도 돼요. 그냥, 일만 해도 되게 됐어요.”
봉철은 그 말에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밀린 건 월급이 아니라, 당신들의 청춘입니다.
난 그걸 이자까지 받아내고 싶었어요.”
그날 밤, 동봉철의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남겨졌다.
“청춘이란 단어가 싫어졌다.
너무 자주 이용당했고, 너무 쉽게 소비됐다.
오늘 나는, 청춘에게 '법'이란 단어를 되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