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을 잠금해제 : 3화 욕조 속의 잠금해제

QR코드를 스캔하자, 동봉철의 사원증에서 갑자기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띠링.
'관리자 모드 진입 – 욕조 접근 권한 부여 완료.'
“욕조라니, 대체 이 회사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 거야…”
그는 지하 1층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내려갔다.
도어락에는 익숙한 메시지가 떴다.
“광대뼈를 인식해주세요. (하반신 전용)”
“…이젠 광대뼈도 상하반신 구분이야?”
당황한 봉철은 주머니에서 여전히 들고 있던 위조 광대뼈 모형을 꺼내,
이번엔 정중하게 두 손으로 ‘세로’로 스캔해보았다.
'띠-'
문이 열렸다.
그 앞엔 고요한 타일 복도, 그리고 자동문 하나.
문 위에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디지털 사장 스파 & 수분 충전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푸르스름한 LED 조명이 빛나는 대형 욕조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었다.
스파욕조에는 미지근한 물이 찰랑이며 고요히 담겨 있었고,
그 위엔 사장님의 이름이 새겨진 노란 오리 튜브가 하나 떠 있었다.
“…설마 이 물에 사장님이 담겨 있다고?”
봉철은 조심스럽게 욕조에 다가갔다.
그때 욕조 옆 디지털 온도계가 점멸하며 경고를 띄웠다.
현재 수온: 31.5℃
사장님 부활 온도까지 1.2℃ 부족합니다.
부활 임계 온도: 32.7℃
“이쯤 되면 나 지금 회사 다니는 게 아니라 '메이플스토리' 하는 기분인데…”
봉철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행동했다.
휴게실에서 몰래 챙겨 온 전기포트, 사무실에서 남은 커피포트를 총동원하여 끓인 물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 뜨거운 물을… 여기에 부어야 한다고?”
사장님의 부활을 위해 그는 욕조에 정성껏 뜨거운 물을 부었다.
온도는 31.9℃ → 32.3℃ → 32.6℃ …
그리고 마침내!
현재 수온: 32.7℃
사장님 부활 조건 충족.
잠금 해제 시퀀스를 실행합니다.
봉철은 뒷걸음질쳤다.
욕조 중앙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더니… 거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으아악!!”
그것은…
상체가 없는 하!반!신! 전용 사장님 복제 AI였다.
검정 슬랙스를 입은 다리 두 짝이, 공중에 붕 떠 있었다.
양말까지 완벽히 코디된 ‘사장님의 하반신’은 욕조 물 위에서 무중력 상태로 회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반신만 담당하는 복제형 사장님AI, 일명 ‘사하(社下)’입니다.
사장님의 걷기 패턴, 발냄새, 회의실 걸음속도 등을 기록하고 있어요.”
“…당신은 진짜 사장님이 아니잖아!”
“맞습니다.
저는 걷기 전용이에요. 감정, 회의, 야단치기 기능은 상반신에 있습니다.
하지만 요청 시, 회사 구내식당까지 안내 가능합니다.”
봉철은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자신은 하반신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진짜 사장님은… 어디 계시냐고!”
“상반신은 아직 수면 중입니다.
부활을 위해선 마지막 잠금: ‘트라우마 해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직… 회식으로만 가능합니다.”
“회식? 진짜 회식?”
“네.
사장님의 트라우마는 2008년 회식 자리에서 맥주병으로 강제로 노래 시킨 경험입니다.
그 기억이 잠금의 마지막 열쇠입니다.”
봉철의 두 눈이 흔들렸다.
“이제 와서… 회식을 열라고?”
“정확히는, 그때 그 회식 분위기를 재현해야 합니다.
조명, 술, 팀장들의 뻘소리, 마무리로 노래방에서 억지 노래.
사장님은 그 기억을 ‘극복’해야만… 완전한 부활이 가능합니다.”
봉철은 욕조에 떠 있는 하반신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욕조는요? 이 다리는요?”
“보관하시거나, 회식에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이동은 자동 롤러 기능 탑재.”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는 회식 준비 공지가 떠 있었다.
[공지]
오늘 18시 회식 있음.
주제: 2008년의 회식 재현.
드레스코드: '2008년식 회사원'
그날 밤,
복도 끝을 두 발로 걷는 슬랙스 바지 하나가 유유히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동봉철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사장님,
진짜 당신을 잠금해제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