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봉철) 양헤는 밤

양 헤는 밤
이불 끝에 기대어
양을 셈한다, 하나 둘 셋
하얀 털결을 흔들며
작은 발굽이 밤을 건넌다.
한 마리,
오늘의 걱정을 넘고
두 마리,
너의 그 말끝을 지나
세 마리,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밟는다.
양을 헤면 잠이 온다지만
나는 자꾸 눈을 뜨게 된다.
왜일까,
그 귀여운 무리가
내 마음의 들판을 맴도는 걸까.
밤이 깊어도
세어도 세어도
너는 오지 않고,
양만이 흘러간다.
양 헤는 밤,
나는 숫자 뒤에 숨어
말하지 못한 마음 하나
조용히 껴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