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 외전 4화: 문신을 가리는 셔츠

돈본철 외전 4화: 문신을 가리는 셔츠
부산의 여름은
봄 없이 들이닥쳤다.
사상구 창고 안은
숨이 막힐 듯한 더위로 끓고 있었다.
선풍기 하나로는 택도 없었다.
콘크리트 벽은 열을 빨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되쏘았다.
본철은
팔뚝까지 내려오는 긴 셔츠를 입고 일했다.
“형님, 벗으이소. 이러다 쓰러지겠네.”
곽사장은 탱크탑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본철은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드릴을 들고
고장난 세탁기 뚜껑을 뜯었다.
그의 왼팔에는
‘가디안’라는 글자가
날카롭게 새겨져 있었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 문방구에서 바늘과 실, 그리고 먹물
그리고 아버지의 라이터를 훔쳐서 팔 위에 직접 새기고
약국에서 구해온 소독약으로 처리를 했던 부산물이다.
맘속에서는 지원진 글자 '가디안'
하지만 그 글자만큼은
팔뚝에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중고 에어컨을 배송하러
남구 문현동 주택가에 갔을 때였다.
에어컨을 옮기다
소매가 걷혀 문신이 보였다.
“어이, 조심합시다.
애들 있는데 뭐하는 거요?”
집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곽사장이 황급히 끼어들며 말했다.
“아, 형님, 팔 좀 조심하이소. 요새는 다 예민하니더.”
그날 저녁.
창고 뒷편에서
곽사장이 셔츠 하나를 내밀었다.
하늘색 면 셔츠.
팔목까지 꽉 여며지는 단추 셔츠.
“이거, 내가 예전에 입던 깁니다.
형님 체격이랑 비슷하이소.
그냥… 보기 좋게 입으이소.”
본철은 말없이 셔츠를 받았다.
손가락이 단추를 하나하나 채웠다.
문신은 사라졌고,
팔은 더위에 질식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덜 놀라게 한다는 것.
그게
자기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
본철은
창고 숙직실에서 셔츠를 벗지 않은 채 잠들었다.
더운 꿈을 꾸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서 도망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