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감옥 실화) 귀 뒤로 손을 넘기지 마라

감옥 안에서 몸짓은 말보다 더 크다.
입을 열기 전, 손이 말하고
눈을 깜빡이기 전, 목이 돌고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신호들이 이 좁은 세계의 언어다.
나는 그 말을 뒤늦게 배웠다.
그날 일을 겪고 나서야, 진짜 감옥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도 별다른 일 없는 오후였다. 식기 세척 작업은 반복적이었고, 어제 마신 콜라 덕분에 나는 작업장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보호받고 있었다.
쌍꺼풀 김은 어느새 내 옆자리 사람이 되었고, 작업이 끝난 후엔 항상 나보다 먼저 손을 닦으며 “이제 버텨볼 만하지?” 같은 말을 던졌다.
내가 참았던 두통이 터진 건, 오후 4시.
묶여 있는 작업화가 작게 쿡쿡 눌릴 정도로 관자놀이가 쿡쿡 아파왔다.
에어컨도 안 도는 통풍구 앞에서 땀을 흘리며 나는 습관적으로 목을 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귀 뒤를 슥 넘겼다.
그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툭’ 하고 내 어깨를 쳤다.
“야.”
나는 돌아봤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은 큰 사내.
면도 자국도 희미한 얼굴, 잇몸이 드러난 웃음을 가진,
이빨 빠진 주방장이 거기 서 있었다.
그는 내 손짓을 봤다.
그 손짓은 ‘도와줘’라는 뜻이었다.
감방 안에는 공식 언어 외에도 ‘신호’들이 존재한다.
귀 뒤로 손을 넘기는 행위는, 그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구조 요청이었다.
도박에 빚졌거나, 누구한테 찍혔거나, 당장 방에서 죽을 것 같거나.
말을 못 꺼낼 상황에 쓰는, 암호 같은 사인이었다.
문제는 그 신호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 언제나 ‘도와주는’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점호가 끝난 후
나는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복도 끝, 방수 타일 깔린 조용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이빨 빠진 주방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너, 신호 보냈지.”
그가 문을 잠그며 말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땀나서—”
“됐고. 지금부터는 네가 잘못했다 생각하고 들어.”
그는 내 멱살을 잡고, 벽에다 밀쳤다.
플라스틱 세면대가 뒤로 흔들렸고, 나는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이 가까이 왔다.
“신호는 신호야. 귀 뒤로 손 넘기면, 넌 ‘상납’ 대상이 되는 거야. 모르고 했다? 그럼 두들겨 맞고 배우는 수밖에 없지.”
그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켰고,
왼손으로 주방장의 허벅지를 찔렀다.
세면도구 안에 있던 플라스틱 칫솔을 깎은 날카로운 조각이 그의 다리에 박혔다.
누군가 준 것이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뭔가는 숨기고 다녀야 한다고 했던 그 조언.
그걸 처음 쓴 순간이었다.
주방장이 비명을 지르자,
나는 뒤도 안 보고 화장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내 앞에는 이미 쌍꺼풀 김이 서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봤지?
이 안에서는 손짓 하나가 살자고 하는 신호가 아니라,
죽자고 하는 제스처일 수도 있어.”
나는 그날 밤, 복도에 있는 CCTV가 돌아가는 방향을 처음으로 제대로 기억했다.
‘카메라는 감시를 하지만, 구조하지는 않는다.’
그건 감옥 안에서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빨 빠진 주방장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다만, 내 방 책상 위에 이런 메모가 놓여 있었다.
“너, 손은 가만히 두고 살아라. 그게 안 되면, 말을 먼저 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