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본철의 감옥 실화) 세탁망에 편지를 넣는 이유

3편 – 세탁망에 편지를 넣는 이유
감옥에서는 누가 가장 위험한가?
주먹 센 놈? 조직 출신? 아니면 간부라인과 친한 재소자?
아니다.
“적이 누구인지 모를 때 가장 위험하다.”
그건 이 안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편지 한 장으로 알게 되었다.
세탁망은 겉으론 깨끗하고 정돈된 구조물이었다.
모든 재소자는 일주일에 한 번 빨래를 내보낸다.
각 방마다 투명한 망에 수건, 팬티, 작업복을 넣고 묶는다.
그런데, 그 안에 가끔 종이 쪽지가 들어간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안다.
세탁 담당 재소자 중 ‘선’이 닿은 자만이 그걸 분류해 교도관에게 전달하거나,
혹은 다른 방에 몰래 전해준다.
나는 그 시스템을 2주 전, 쌍꺼풀 김한테 처음 들었다.
“편지는 곧 거래야. 말로 하는 건 들킬 확률이 크지만,
세탁망은 교도관도 전부 열어보진 않아.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는 놈들끼리만 돌아가.”
그때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날 아침, 내 옷가지가 담긴 망 안에서 낯선 쪽지가 하나 나왔다.
누가 넣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세탁물을 봉인할 때까지 내 손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쪽지는 A4용지를 8등분으로 접은 크기였고,
글씨는 깨끗한 고딕체로 쓰여 있었다.
“넌 이제 누구를 밀고할 건가?”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 문장은 협박도 아니었고, 유혹도 아니었다.
그저 선택을 요구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식기반에서도, 복도로 나가는 줄에서도,
쌍꺼풀 김이 던지는 말에도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밤, 쌍꺼풀 김이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긴장 풀어. 그 편지, 그냥 지나가는 경고일 수도 있어.”
“경고면 보통 이름을 적지 않나?”
“이 안에서 제일 무서운 건 익명이지.
이름을 안 적는 놈은,
자기가 들킬 일 없다는 확신이 있는 놈이야.”
나는 담배를 받지 않았다.
그 대신 그에게 물었다.
“너는 예전에, 편지 받아본 적 있어?”
그는 처음으로 침묵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한 번 받았지.
그때 내 선택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어.
그 대신 내가 당했지.
하지만 최소한, 밀고자는 안 됐어.”
나는 그 말 속에 숨겨진 후회를 읽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한동안 누군가의 방에서 심부름을 하며
반쪽짜리 사람처럼 지냈다는 소문을 들었다.
며칠 뒤, 나는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도 세탁망.
이번엔 내가 입지도 않은 팬티 속에 있었다.
“우린 기다린다.
네가 가만히 있는 걸 ‘무시’가 아닌 ‘동조’로 받아들일 수 있어.
누구 하나 곧 터진다.
네가 말하면 너만 안 다친다.”
쪽지는 불에 타기 좋은 크기였다.
나는 그걸 세면대에 물을 받아 녹였다.
그리고 그 물을 화장실 바닥에 흘렸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밤, 방 안이 조용한데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우두둑' 손가락을 꺾는 소리를 냈다.
아무도 안 나갔다.
하지만 다들 들었다.
“돈본철, 선택 안 했구나.”
그 소리는 누구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모두의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4방의 마사오가 징벌방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누군가가 밀고를 한 것이었다.
내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았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내게 편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내 자리는 변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나를 '건드리면 안 되는 놈'이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는 감옥에서 처음으로
'말하지 않음'이 권력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