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철 이중간첩 연대기》 제1부. 동해를 건너다

제1부. 동해를 건너다
2000년 6월, 동해안 밤바다는 거칠었다. 파도는 거세게 몰아쳤고, 달빛조차 거품 사이로 희미하게 깜빡거렸다. 그 바다 위를,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뗏목을 밀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돈봉철. 북한군 장교 출신이었고, 보위부의 엄중한 지령을 받고 있었다.
“남조선 땅에 뿌리 내리고, 명령을 기다려라.”
그 지령을 가슴에 품고, 봉철은 스스로 뗏목을 만들었다. 나무를 엮고, 군용 방수포를 덮었으며, 부표 대신 군용 수통을 공기에 가득 채워 매달았다. 죽음이 가까운 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노를 저었다.
동틀 무렵, 그는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 닿았다. 초췌한 몰골, 갈라진 입술, 피로로 굳어버린 손가락. 그러나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남한의 국경수비대는 곧 그를 발견했고, 돈봉철은 준비된 연기를 시작했다.
"나는 북한을 배신하고 넘어온 사람입니다. 자유를 찾아 왔습니다!"
그날 남한 사회는 열광했다. 언론은 앞다투어 '용기 있는 탈북 장교'를 칭송했다. 정부는 그에게 보호 조치와 정착 지원금을 약속했다. 시민단체는 그를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고, 봉철은 기꺼이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모든 것은 계획된 대로였다.
밤이 되면, 그는 작은 원룸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번화한 남한의 거리,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
그는 조용히 손목시계를 풀어 뒷면을 열었다. 거기엔 미세하게 새겨진 한 줄 문구가 있었다.
“1단계 완료. 남조선 군사 정보 수집 대기.”
돈봉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남한은 그를 자유의 투사로 믿었지만, 그는 북쪽 하늘 아래, 또 다른 진짜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동해를 건넜고,
남한 땅에 잠들어 있던 '붉은 그림자'가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