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동봉철 연대기: 제3화. 해고는 살인이다

경남 거제의 조선소.
밤이 되자, 조선소 내부는 철제 구조물의 그림자와 희미한 작업등만이 잔존한 공간이 되었다.
그 위로 솟아오른 45미터짜리 크레인 꼭대기.
거기엔 네 명의 해고노동자가 하얀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었다.
“우리는 해고당한 게 아니라, 삶을 박탈당한 겁니다!”
크레인 밑, 천막 한 동.
그 안에는 낡은 매트 위에서 서류 가방을 베고 누운 변호사 한 명이 있었다.
동봉철.
그는 해고노동자들의 대리인으로 이 조선소에 내려온 지 12일째였다.
크레인 위의 겨울은 혹독했다.
바람은 바다에서 불어왔고, 위에서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밑에서 매일같이 뜨거운 국을 끓여 올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치면 안 됩니다. 아직 우리는 이기지 않았어요.”
그건 봉철이었다.
그는 고공농성자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언론 인터뷰 대응을 준비하고, 조선소 측과의 협상 자리마다 굳건히 앉았다.
조선소 사측은 단호했다.
“우리는 정리해고 절차를 밟았고, 법적 문제는 없습니다. 복직은 없고, 위로금만 고려할 수 있습니다.”
봉철은 말없이 회의실 창문 밖 크레인을 바라보다가, 꺼내려다 말았던 스마트폰을 들었다.
“해고는 정당했다, 법적으론.
하지만 사람은 법보다 약합니다.
오늘 이 크레인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이 회사는 더 이상 배를 못 만들 겁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측 이사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변호사님, 협박하시는 겁니까?”
봉철은 서류 가방을 가볍게 두드렸다.
“협박 아닙니다. 저는 ‘사실 예고’만 합니다. 여론은 차갑고, 죽음엔 판결이 없습니다.”
5일 후, 협상 타결.
해고노동자 12명 중 7명은 단계적 복직. 나머지 5명은 위로금 수령 및 직무 전환 교육 지원.
크레인에서 노동자들이 내려오던 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노동자 중 하나가 울먹이며 봉철에게 외쳤다.
“내려올 수 있었던 건, 거기 밑에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먹을 쥐고 외쳤다.
“해고는 살인이다!
우리는 살았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준 이는 법이 아니라, 함께 밑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봉철은 조용히 뒤돌아 나왔다.
다음날 아침, 현장 식당의 낡은 칠판에 누군가 분필로 적어놓았다.
“오늘도 조선소는 일하고, 사람은 존엄하다.
동봉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