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동봉철 연대기: 제4화. 스프링클러를 멈춰라

서울 강남, 어느 대형마트 2층 직원 휴게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28명이 마트 본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자발적인 점거 농성에 들어간 지 3일째 되던 날.
점거 시작 이틀째 밤, 마트는 전기와 수도를 끊었고, 화장실 출입도 막았다.
그러다 3일째 새벽 3시, 마트 관리팀이 스프링클러를 강제 작동시켰다.
천장에서 퍼붓는 차가운 물.
쓰러지는 박스, 젖어버린 매트 위에서 울부짖는 노동자들.
“이건 살수차보다 비열한 공격이에요!”
농성장의 혼란 속, 노동자 대표가 손에 쥐고 있던 건 동봉철 변호사의 명함 한 장.
오전 4시 40분, 봉철은 젖은 운동화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서울중앙지법 민사신청과에 뛰어들었다.
들고 있던 서류는 단 네 쪽.
‘가처분 신청서 – 긴급 구조 및 점거 중지 간섭 중단 요청’
신청인: 마트 비정규직노동자 일동
대리인: 동봉철
야간 당직 판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시간에 판사 부르는 게 말이 됩니까?”
봉철은 담담히 말했다.
“물 쏟아지는 곳에선 밤이 없고, 법도 잠들지 않습니다.”
그는 휴대폰 영상을 틀었다.
젖은 옷을 입은 중년 여성노동자가 스프링클러 아래서 덜덜 떨며 외치는 영상.
“애가 대학 붙었는데… 학자금 모으려다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요!”
영상이 끝나자, 판사는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켰다.
“접수하겠습니다. 다만 오늘 아침까지 효력 발생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봉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요히 말했다.
“늦더라도, 쏟는 자보다 멈추는 자가 법이어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 9시, 가처분 인용 결정.
마트는 스프링클러 작동 중지, 전기 및 수도 재공급, 농성자 퇴거 강요 금지 판결을 받았다.
이튿날 저녁, 마트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농성자 대표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우리를 구해준 건 담요가 아니라 판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을 가능하게 만든 건 변호사 한 사람의 ‘잠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봉철은 인터뷰를 거절한 채 조용히 뒤로 빠졌다.
편의점에서 따뜻한 컵라면을 사 들고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법은 춥고 건조하지만, 사람이 그 안에서 울면 물이 되지.
오늘도, 법에 물 한 바가지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