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봉철 감옥썰) 제4화. 접견실의 붉은 립스틱 (레지 접견 사건)

제4화. 접견실의 붉은 립스틱
“접견 신청 들어왔다.”
그 말에 감방 전체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평소엔 변호사거나 부모, 아니면 조직 윗사람이 보낸 메시지 정도.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접견장에 들어선 여자는 붉은 립스틱에, 체크무늬 코트, 구두 굽 소리마저 요란했다.
“와, 저거 레지 아냐?”
“야, 진짜 다방 레지 같다. 무릎 위까지 스타킹 봤어?”
레지. 감옥 안에선 외부 여성, 특히 다방에서 일하던 여성을 ‘레지’라고 부른다. 그 말엔 욕망, 질투, 공포가 섞여 있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억지로 숨을 참았다.
하지만 돈봉철은 눈을 마주쳤다. 접견실 유리창 너머, 고개 숙인 여자의 귓불엔 금빛 귀걸이가 달려 있었고, 봉철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다.
일주일 전, 팔짱과의 밀담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팔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여자가 네 뒤 봐주는 윗선이냐?”
“아닙니다. 그냥... 오랜 팬입니다.”
“그럼 팬미팅 값은 있어야겠지.”
돈봉철은 미리 준비한 담배 보루 15개, 신권 20만 원, 그리고 라이터 3개를 작은 두루마리 휴지통에 담았다.
그게 팔짱의 ‘기본 단가’였다. 창고로 연결된 쪽문, 청소 시간의 빈틈, 무전기로 CCTV를 끄는 순간까지—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접견 시간은 20분. 그 안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오고 간다. 유리는 원래 방음 처리돼 있지만, 그날은 특수 열쇠로 ‘방문 접견실’이 열렸다. 예외 중의 예외, 기록에도 남지 않는 회색 구역. 재소자들끼리는 ‘귀신방’이라 부른다.
귀신방. 이 안에선 손도 잡을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다. 심지어 **도 된다.
그 방 안에서, 봉철은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묻혔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냥 숨 쉬었다. 감옥에선, 말보다 숨이 더 귀하다.
접견이 끝난 뒤, 레지는 아무 말 없이 코트 깃을 세우고 나갔다. 그리고 봉철은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방 사람들도 눈치를 챘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오직 하나—그날 밤, 봉철의 베개 밑엔 꺾인 립스틱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건 협박이자 경고였고, 동시에 이 감옥 안에서 봉철이 ‘사람’이라는 증거였다